군산 근대 역사 박물관 [군산 시간 여행 마을 #12]

군산 근대 역사 박물관은 군산의 근대 역사와 문화를 특화해 만들어진 곳이다. 이 곳은 선사시대는 물론 과거 국제 무역항으로 물류 유통의 중심이었던 시절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현재의 많은 역사가 나열되어 있으며 특히 일제 강점기에 이루어진 쌀 수탁과 관련한 아픈 역사를 집중 조명하여 과거를 되새길 수 있는 전시장이다.

군산 근대 역사 박물관은 군산 장미동에 위치해 있다. 군산 고속 버스터미날과 군산역에서 택시로 약 10~15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시내버스로도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물론 주차공간도 충분하니 자차로 방문해도 문제가 없는 곳이다. 인근에는 군산 세관과 진포 해양테마공원 등 군산 여행지가 많은 곳에 위치해 있다.

군산 근대 역사 박물관의 입장료는 성인 2천원 청소년/군인은 천원 어린이는 500원이다. 군산 시민의 경우 50%할인률이 적용되며, 통합권의 경우 3천원이다. 통합권은 박물관, 미술관, 건축관, 위봉함 까지 모두 볼 수 있는 표인데 대부분 먼길 오셨을테니 통합권을 구매하셔서 입장하시는 걸 권해드린다.

군산 근대 역사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시대별로 소개가 되어 있는 모습이다.

이 곳은 해양 물류 역사관이다. 선사시대에서 부터 군산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의 흔적들을 볼수있는 곳이다.

오식도 화포에 대한 내용들도 볼 수 있고

구석기 시대 유물들도 볼 수 있다.

백제 시절 군산 지역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도 볼 수 있고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요여라는 장례 물품도 전시되어 있다.

백자도 전시되어 있는데 여러 자기 중에 백자가 나의 취향을 자극한다.

토기와 삼지창 그리고 장신구의 모습들도 보인다.
여행을 다니며 박물관을 다닐 수록 이런 유물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시대에 사용된 양식들도 미니어쳐로 형태로 만들어 전시중이다.

고군산 일대의 장례 문화와 초분에 대한 설명들이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청자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2층에는 독립 운동과 관련한 특별 전시관이 나온다.

군산은 지역적 특성으로 일본의 수탈을 유독 많이 당한 지역인데 그 이유로 독립 영웅들이 많이 있던 지역이라고 한다. 그 독립 영웅들의 이름들을 빼곡히 적어 놓았다.

독립 영웅들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물품과 해외 독립 유공자들의 이름들도 전시되어 있다.

옥구 농민 항쟁 주역들의 이름들도 남겨져있다.

옥구농민 항일항쟁
옥구 이엽사 농장 소작 쟁의는 지역 농민 조합이 주도한 농민 운동으로
일제의 식민 수탈 체제에 대항한 항일 농민 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는 쟁의에 참여한 소작농들이 경제적 투쟁을 넘어
민족의 자존과 독립을 위해 소작쟁의를 진행시킨 것이다.
또한 농촌 사회 공동체 조직이 근간이 되어 쟁의가 전개된 점에서
1920년대 후반 전라북도 지역농민 운동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군산 출신 독립 유공자 11인의 명단이다. 이분들의 숭고한 희생에 감사드린다.

가장 좋아하는 문구 중 하나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호남 최초 3.1 만세 운동 유공자 20인의 명단이다. 많은 분들의 희생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될 수 있었다.

군산 만세 시위 재판 판결문이다. 저 재판문으로 일제는 얼마나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죽였을지…
힘 없는 민족의 아픔이 느껴진다.

일제 강점기에 순국하신 독립 유공자가 전라북도에서는 임실이 가장 많고 다음이 군산 지역이다.

일제 항쟁의 흔적들

군산 8인의 의병장

이준명 의병장 훈장과 문형모 장군의 유품이다.
2층 특별 전시관을 들여다 보며 일본에 대한 분노와 그동안 일본 문화를 쉽게 받아 들인 나 자신을 반성해본다.

3층으로 올라가면 일제 강점기 시절의 근대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는 근대 생활관과 만날 수 있다.

채만식 작가의 장편 소설 탁류의 일부이다.

이렇게 애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탁류 얼러 좌르르 쏟아져버리면서 강은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인력거이다.
올라 앉거나 손대지 말라는 문구가 보인다.

1930년대의 거리 모습을 재현한 모습이다. 간판이라던지 일본풍의 건축 양식들이 눈에 들어온다.

상점 내부의 모습인데 비단과 사탕 그리고 주판도 보인다. 당시 거래하던 물품들을 볼 수 있는데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아이들에게는 옛날 상점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어릴적 시골 할머니 댁에서 볼 수 있던 물건들이 제법 보인다.
지금은 사용하는 사람들이 없지만 당시에는 고가의 귀한 대접을 받았을 물건들

안으로 들어가면 인력거 모형이 또 보이는데 이 곳에서 기념촬영을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줄 서서 촬영을 하는데 나 홀로 여행에 찍어줄 사람이 없어 인력거만 찍어 본다.

고무신 상점도 보인다.
나는 신어 본 적이 없지만 그 당시에는 지금의 브랜드 운동화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을 고무신이다.

어릴적 학교 친구 중에 실내화 대신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친구가 있었는데 왜 그걸 신는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너무 편하다는 답을 들었다.

1920년대에는 고무신이 지금 우리의 나이키, 아디다스 처럼 사람들이 선호하는 아이템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인기가 너무 대단해서 학생, 성인 할 것 없이 모두 고무신을 갖는 것을 바랬다고 한다.

고무신의 가격표. 먹을 것도 무척이나 귀했던 그 시절 지금의 화폐가치와는 달라 감은 없지만 그 당시에는 상당한 금액이었을 것 같다.

1932년 경성고무공업 주식회사에 대한 내용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의 자본으로 설립된 유일한 회사였다고 한다.
당시 가장 핫했던 아이템인 고무신을 군산의 독지가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미담이 적혀 있다.

술파는 양조장이다.
밖에 나와있는 술독이 낮설지 않은데 일본 소도시 여행을 갔을 때 보이던 커다란 술독이다.

술지게미의 설명도 볼 수 있는데 냄새도 맡아 볼 수 있다.
그때 당시 청주병과 지금의 고급 청주병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 모습이다.

술 지게미란?
곡식으로 술을 빚은 후, 술을 짜내고 남은 술 찌꺼기를 말하는 것으로 주박, 주정박 이라고 한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싲절, 밥 대신 술지게미를 끓여 먹였으며, 물에 섞은 후 걸러서 막걸리를 만들기도 하였다.
특히, 이 술지게미는 군산의 주 특산물인 울외장아찌의 주 원료이기도 하다.

쌀의 도시 군산의 실상
군산은 양질의 쌀이 생산되고 소비계층이 두터워서 양조 산업이 번성하였다. 
1932년 군산에는 9개의 양조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조화나 향원주조 등은 해방 이후에도 유지되었다. 
1년동안 생산 판매액을 보면 소주20석, 약주 619석, 탁주 4,351석, 일본 정종 2,565석이었다.
특히 탁주의 소비가 수위를 차지하고 점점 늘어갔던 이유는 가난한 조선 사람들이
탁주를 음식 대용으로 이용하기도 했기 때문인데 양조장의 술지게미로 허기를 달래기 위해
매일 아침 십여명이 양조장 문앞에 줄을 서는 모습이 쌀의 도시 군산의 실상이었다.

일제하 양조 사업의 변화
우리나라에서 술은 각 집안마다 고유하게 가양주를 빚어내거나 주막에서 빚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등록된 업체만 술을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술의 생산을 통제하고 주세를 재정으로 확보하기 위한 것있다. 
이로 인해서 가양주나 소규모 주조는 밀주로 불법화되고 
양조업과 판매업이 분리되어 양조산업과 주류 판매상이 등장하게 되었다.

일본의 주세정책으로 우리나라의 좋은 전통주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에 반해 일본은 주류사업이 비약적으로 발달해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술 들이 제법 있다. 이 역시 식민지의 아픔이라고 볼 수 있다.

옛 군산항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부잔교
부잔교(일명 뜬다리 부두)는 서해안의 특징인 조수간만의 차로 인한 부두 기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제작되었다.작동형태는 썰물로 바닷물이 빠져 나가면 배를 정박하는 부두 인근에 갯벌(5~10ㅡ)이 드러나 배가 부두에 정박할 수 없는 점을보완하고자 물에 뜰 수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의 정박시설을 건설하고 부두에서 정박시설 사이에 다리를 만들어 밀물과 썰물 시 상하로 움직이며 선착장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설치되었다. 부잔교는 일제가 전라도 곡창지역에서 수탈한 쌀을 일본으로 수탈하기 위해 설치한 항만시설로 제3차 축항공사기간(1926~1933)에 부잔교 3기를 설치하여 3천 톤급 기선 3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후 3기가 추가되어 6기가 사용되었다.

군산항의 상징인 옛 부잔교를 재현해 놓은 모습이다. 지금도 바로 옆 해양 공원에 가면 부잔교를 볼 수 있다.

군산의 극장 군산좌에 대한 설명과 당시 영화 촬영지로 각광받던 군산 지역에 대한 내용 그리고 군산 출신 배우 남춘역 님의 설명이 보인다.

근대화 시기 군산의 모습을 작게 재현해 놓은 모습이다.

군산은 삼국시대 백제왕국의 관문으로 고려, 조선시대 세곡 운송의 중심지로 물류 유통을 기반으로 한 상업문화를 꽃피운 도시였다. 일제강점기 수탈과 저항의 아픔을 간직한 군산에서 근대기 민족자본의 자존심을 세운 이름없는 객주들과 광복이후 오늘의 군산을 만들어낸 경제인들을 우리는 근대산업의 거인들이라고 부른다.

1900년대 군산 객주들의 민족 정신을 확인 할 수 있는 사진이다.

그분들의 사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이다.

동선을 따라 오다 보면 기획 전시실을 만날 수 있다. 그 당시 잠수 장비들도 전시되어 있다.

기획전시실 까지 보면 1층으로 연결된다. 1층에는 어린이 체험관도 보인다.

군산 근대 역사 박물관 내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있다. 사진을 편집하면서도 사진이 너무 많아 추리고 추린것이 이정도인데 이번 여행 코스 범위가 생각보다 너무 넓어 빠르게 지나온게 너무 빠르게 지나와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박물관만 해도 반나절 이상 시간을 써야하는 곳이라 생각될 정도인데 다음번에 올 때에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 볼 생각이다.

J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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